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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

복원이라는 이름의 훼손

복원이라는 이름의 훼손

오래된 흑백 사진을 단 1초 만에 선명한 고화질 컬러 사진으로 바꿔주는 시대다. AI 기술의 발전은 흐릿하게 뭉개진 과거의 윤곽을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되살려낸다. 사람들은 이것을 '복원'이라 부르며 환호한다. 하지만 기록을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완벽해 보이는 결과물을 마주할 때면 종종 서늘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과연 이것은 진짜 '회복'된 것일까?


때로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교묘한 훼손이 일어난다.

실무를 하는 디자이너들은 종종 오래된 사진의 낡은 스크래치나 얼룩을 지워내는 정도는 원본의 훼손이 아닌, 당연하고 착한 '복원'이라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그 스크래치조차도 원본이 지닌 힘이자 역사의 지문이다. ‘신라의 얼굴(얼굴무늬 수막새)’로 불리는 유물이 완벽하고 온전한 원형이 아니라 깨어지고 떨어져 나간 파편이기에 오히려 더 깊은 여운과 의미를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상처를 매끄럽게 지워버린 자리에는, 시간이 축적해 낸 압도적인 감각도 함께 증발해 버린다.


원본사진. 아래가 ai로 보정한 사진이다. 해상도가 높아지고 선예도가 높아진걸 볼 수 있다.

하지만 확대해 보면 교묘한 변형이 일어났다. 글씨는 조금씩 변형됐고 작은 디테일들이 왜곡됐다.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과정은 이 '서늘한 진실'을 가장 묵직하게 짚어주는 사례다.

과거 무너져가는 탑을 지키기 위해 일제가 선택한 방식은 당시 최신 기술이던 시멘트를 부어 굳히는 것이었다. 탑을 살리겠다는 당대의 '최선'은 훗날 185톤의 끔찍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남아 100년 넘게 '흉물'로 손가락질받는 역설을 낳았다.

반면, 최근 20년에 걸친 해체 복원 작업에서 전문가들은 유실된 상층부를 임의로 만들어 올리지 않았다.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비워둔 채, 비대칭의 불완전한 6층까지만 형태를 잡아 마침표를 찍었다. 진짜 복원이란 과거를 상상력으로 덧칠해 번듯한 '새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부분은 빈칸으로 남겨두고 상처마저 역사의 일부로 껴안는 태도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로우데이터(Raw Data)의 보관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 된다.

변색된 인화지, 끝이 닳아버린 문서, 노이즈가 자글자글한 저해상도 사진. 우리는 이 '불완전한 상태' 자체를 하나의 완벽한 역사로 존중해야 한다. 시간이 만들어낸 훼손의 흔적조차 그 시대가 남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헤리티지를 구축할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일은, 이 낡고 거친 원본 데이터를 어떤 외부의 개입도 없이 '있는 그대로' 안전하게 봉인하여 보존하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진실의 영점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듬어지지 않은 원본만이 정답일까?

여기서 우리는 아카이빙의 또 다른 본질, 즉 ‘확산(Spread)’이라는 현실적인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수장고 안에 완벽하게 보존되어 완벽하게 잊힌 기록은 죽은 기록이다. 과거의 유산이 현재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고, 소비되어야 한다.

이때 옛것을 있는 그대로 전시하거나, 흠집만 적당히 리터칭 해서 보여주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활용이다. 진짜 확산은 옛것의 원형과 본질적인 의미를 간직한 채, 지금 시대의 트렌드와 감각에 맞춰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이것은 옛것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일이자, 미래에 보내는 편지다.

흔히 '전통'이라 이름 붙여진 것들을 보라. 그것들은 결코 박제된 채 머물러 있던 고정불변의 덩어리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모진 시간을 견디고, 당대의 감각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하며 끝내 지금으로 이어져 온 치열한 생존의 결과물이다.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역사는 고립될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보존’과 ‘활용’의 경계를 명확히 아는 태도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더라도 '원본(Archive)'은 종교처럼 엄격하게 지켜내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자산(Asset)'은 지금 시대의 감각에 맞춰 과감하고 유연하게 가공해야 한다.

무엇을 철저히 지키고, 무엇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이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일. 그것이 기록을 대하는 방식이자, 훼손 없이 과거를 미래로 연결하는 가장 진정성 있는 태도일 것이다.